Arcadian Story


요근래 Chatbot과 대화를 나누는 중년이 늘었다고 한다. 왜 그러는지 알지만, 자존심상 그럴수는 없지. 그보다는 요즘은 잘 못하는 덕질 이야기를 AI와 하고, 그 기록을 남기려 한다. 혼자 읽기 위한 소설 창작. 독자가 나 하나뿐인 소설 만들기. 그런데, 막상 해 보니 이거 가성비 나오는 일인데. 전체 스토리는 못 만들어도 장면 장면을 만드는 데에는 충분히 소질이 있다.

Arcadian Story.

Prologue: Discovery

관제실의 야간 조명은 늘 같았다. 천장 패널의 푸른빛, 벽면을 따라 천천히 흐르는 상태 표시선, 사람 얼굴의 혈색을 지워버리는 희미한 백색 모니터 빛. 교대가 바뀌는 시간쯤이면 누구나 약간씩 자기 몸에서 분리되는 기분을 느꼈다. 커피는 식고, 냉각팬은 같은 속도로 돌고, 숫자는 너무 오래 바라보면 아무 의미도 남기지 않은 채 흘러갔다.

항법분석관 이레는 그런 밤을 싫어하지 않았다. 지루함은 대체로 우주의 정상이었다. 모든 것이 예측대로 움직인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녀의 콘솔에는 외행성 탐사선 아르고스-1의 별추적 데이터가 열려 있었다. “별”이라는 표현은 관습일 뿐이었다. 공식 용어는 배경광 기준점. 내계 바깥, 닿을 수 없는 하늘의 점광원들. 항법 시스템은 그것들을 이용해 자세를 잡았고, 천문국은 수세기 동안 그 위치를 갱신해 왔다. 배경광은 배경광이었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이레는 네 번째 재보정 루틴을 돌리고 있었다. 외곽을 향해 나아가는 탐사선은 태양복사압과 미세 입자 충돌 때문에 자세 오차가 조금씩 누적됐다. 주기적으로 기준광 카탈로그와 대조해 보정해야 했다. 지루하고 확실한 작업이었다. 화면에 떠 있는 812개 기준광 중 하나가 노란색으로 바뀌었을 때도 그녀는 처음엔 하품을 참으며 로그 창만 열어 보았다.

좌표 오차 0.41 마이크로각초.

“너무 작네.”

혼잣말이었다. 그녀는 오차 플래그를 눌러 센서 온도와 자이로 상태를 확인했다. 모두 정상. 수광소자 잡음도 허용범위. 고에너지 입자 히트 흔적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종류의 이상치는 대개 데이터 압축 구간에서 생겼다. 아르고스-3는 지금 통신 대역폭을 아끼기 위해 항법 데이터를 강하게 압축하고 있었다.

그녀는 재측정을 요청했다. 탐사선까지 왕복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옆자리의 레온이 종이컵을 들고 와 그녀의 책상 가장자리에 놓았다.

“또 밤샘이야?”

“배경광 하나가 삐졌어.”

“배경광이 삐질 리가 있나.”

“그러니까.”

레온은 웃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이레도 같이 웃었다. 정확히 그런 이유로 배경광을 좋아했다. 변덕이 없었다. 내계의 행성들은 조금씩 흔들리고 가스 거인은 대기의 띠가 계절마다 달라졌고 혜성들은 끝없는 예외의 목록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배경광은 아니었다. 배경광은 하늘의 격자였다. 정적인 질서였다.

재측정 결과가 도착했다. 노란 점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차는 0.39 마이크로각초. 방향도 거의 같았다.

이레는 컵에 손을 뻗다 멈췄다. 잠깐, 하고 생각했다. 두 번째면 온도 드리프트일 수 있다. 탐사선 자세 재구성 모델이 틀렸을 수도 있다. 광학계 열팽창, 반응륜의 미세 진동, 압축 알고리즘 편향. 그녀는 더 세밀한 필터를 걸었다. 세 번째 재측정. 네 번째 재측정.

오차는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방향으로 조금 더 벌어졌다.

그녀는 손끝으로 화면을 확대했다. 검은 배경 위에 찍힌 작은 흰 점. 이름은 K-44118. 천문국 카탈로그에 기록된, 아무 의미 없는 기준광 하나. 그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죽은 뒤에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배운 점.

“레온.”

이번엔 목소리가 컸다. 레온이 돌아봤다. 이레는 화면을 가리켰다. 레온이 의자를 끌고 와 로그를 훑었다. 둘 다 잠시 말이 없었다. 관제실 뒤편에서는 누군가 웃었고, 다른 구역에선 프린터가 낮게 떨렸다. 그런 일상적 소음이 오히려 불쾌할 정도로 선명했다.

레온이 말했다.

“배경이면 움직일 리가 없잖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팀장 카신이 호출을 받고 다가왔다. 그는 거의 습관적으로 눈썹을 찌푸린 채 화면과 로그를 번갈아 봤다. 다 본 뒤에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아주 평범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비 점검.”

그 말은 안심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더 차갑게 만들었다. 장비 점검은 모든 심각한 일이 가장 먼저 뒤집어쓰는 가면이었다.

아르고스-3의 광학계 상태, 자이로 바이어스, 태양 센서, 항법 필터, 데이터 중계 노드, 지상국 복호화 모듈까지 점검이 들어갔다. 두 시간, 다섯 시간, 여덟 시간. 새벽이 가까워질 즈음, 아무 오류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동안 K-44118은 다섯 번 더 측정되었다. 매번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같은 방향으로 어긋났다.

관제실은 어느 순간부터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모두가 자기 손을 모니터 가까이 가져가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고정된 것이 고정되지 않을 때, 흔들리는 것은 화면 위의 점 하나가 아니었다. 사람은 자기 안에서 제일 깊은 층을 먼저 잃는다. 당연한 것의 구조를.

카신은 중앙 천문국의 야간 책임자에게 호출을 넣었다. 화면 위로 천문국 휘장이 뜨고, 잠에서 덜 깬 얼굴의 노학자가 나타났다. 그는 처음엔 노골적으로 짜증을 냈다.

“항법실에서 배경광 오차 때문에 직통을 쓰나?”

카신은 말없이 데이터 묶음을 전송했다. 노학자는 화면을 보다가 눈썹을 올렸다. 대수롭지 않게 몇 줄을 넘기던 손이 멈췄다. 다시 앞으로 당겨 확대했다. 그리고 점점 더 말이 없어졌다.

“같은 방향으로?”

“예.”

“반복 횟수는?”

“현재 열한 번.”

노학자는 한참 뒤 말했다.

“다른 기준광도 확인하시오.”

이미 하고 있는 작업이었다. 그래도 모두가 다시 확인했다. 812개 중 세 개에서 같은 유형의 오차가 나왔다. 두 개는 미약했고, 하나는 K-44118보다 조금 작았다.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였다.

이레는 갑자기 자기 등이 식어가는 걸 느꼈다. 세 개. 하나가 아니었다. 우연은 대개 하나의 얼굴만 하고 온다. 둘이 되면 구조가 생긴다.

벽면 시계가 04:13을 가리켰을 때, 천문국 노학자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록을 봉인하시오. 재측정 프로토콜 전환. 그리고… 이 단어는 아직 쓰지 마시오.”

누구도 어떤 단어인지 묻지 않았다.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농담과 금기로만 존재했던 단어. 내계 바깥의 점광원이 유한한 거리에 있을 때만 의미를 갖는 단어.

연주시차.

이레는 모니터를 보았다. 작은 흰 점 세 개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아니, 이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혹은, 그 자리에만 있지 않았다.

관제실 누군가가 커피를 쏟았다. 종이컵이 넘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아주 작은 소리였는데 이상하게 크게 울렸다. 아무도 치우러 가지 않았다.

카신이 말했다.

“오늘 밤 일어난 일은 여기서 나가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그 말이 얼마나 허약한지 알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사실은 비밀로 지켜지지 않는다. 비밀이 되기엔 너무 크고, 너무 늦다. 이미 하늘 자체에 금이 갔는데, 입을 다문다고 봉합되는 건 아니었다.

이레는 몸을 돌려 관제실 뒤편의 좁은 창으로 걸어갔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고, 도시의 외곽 고속도로 위로 드문 차량들이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언제나와 같았다.

검고, 맑고, 점광원들로 촘촘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 온 바로 그 하늘. 시인들이 노래하고 항법사들이 신뢰하고 아이들이 소원을 빌었던 하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얼굴로, 아무 일도 숨기지 않은 척하며, 그대로 있었다.

이레는 그 익숙함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같은 하늘인데 이제는 아니었다. 저 점들 가운데 몇 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천구의 장식도, 닫힌 외피에 박힌 핀홀도 아니었다. 정말로 거기에 있는 무언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멀고, 그러나 무한은 아닌 곳에 있는 무엇.

그녀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밤은, 밤의 표면뿐이었을지 모른다.

뒤에서 카신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레는 돌아섰다. 팀장은 늘 그렇듯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날 밤만큼은 실패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엔 피로보다 더 오래 갈 것이 섞여 있었다.

“이레. 첫 보고서 초안을 네가 써.”

“왜 저요?”

카신은 잠시 망설였다.

“가장 먼저 봤으니까.”

그 말은 칭찬이 아니었다. 증언을 뜻했다.

이레는 자리에 돌아와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제목란이 비어 있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다가, 결국 가장 무난한 문구를 적었다.

배경광 기준점 위치 이상에 대한 예비 보고

너무 평범한 제목이었다. 마치 오늘 밤 일어난 일이 소프트웨어 패치 수준의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그녀는 그 아래 첫 줄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사실을 사실대로 쓰면 안 될 것 같았고, 사실보다 약하게 쓰면 거짓말 같았다.

모니터 한쪽 구석엔 K-44118이 계속 떠 있었다.

작고 희고, 태연했다.

이레는 천천히 문장을 써 내려갔다.

외행성 탐사선 아르고스-1의 항법 재보정 과정에서, 배경광 기준점 K-44118 외 2개 광원에 대해 반복적이며 방향 일관성을 가진 미세 각변위가 검출되었다. 현재까지 계통 오차의 명확한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거기까지 쓰고 그녀는 멈췄다. 손가락이 다음 문장을 거부했다.

현재까지 계통 오차의 명확한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다.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니, “알았다”기보다 이제는 피할 수 없었다. 원인이 없지 않았다. 단지 그 원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 지금까지 자신들이 살았던 우주의 구조 전체가 바뀌게 될 뿐이었다.

관제실 중앙의 대형 스크린에 아르고스-1의 현재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모성에서 멀리, 외행성 궤도 바깥으로 향하는 작은 점. 그 점이 오늘 밤 문명의 시야를 대신 넓혀 주었다. 그 작은 금속 기계가, 집을 너무 멀리 떠난 덕분에, 처음으로 하늘의 거짓말을 알아챘다.

이레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동쪽 하늘이 아주 조금 옅어지고 있었다. 도시가 곧 아침을 맞을 것이고, 사람들은 출근하고, 시장은 열리고, 학교는 수업을 시작할 것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하늘을 그릴 때 작은 점들을 찍을 것이다. 시인들은 여전히 밤을 닫힌 음악처럼 쓸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상 위로, 아직 아무도 모르는 하나의 사실이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하늘은 멀다.

너무 멀어서, 그 문장을 이해하는 데 한 문명이 꼬박 한 세기를 쓰게 되리라는 걸 이레는 아직 몰랐다. 다만 그날 새벽, 그녀는 자기 생애가 둘로 갈라졌다는 것만은 알았다. 배경광이 움직이기 전과, 움직인 뒤.

카신이 조용히 말했다.

“재측정 계속한다. 오늘부터 모든 게 바뀐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말은 이미 사실이었다.

전야

수도 천문원 북관의 겨울 응접실은 원래 음악회를 위해 지어진 방이었다. 천장이 높고, 벽은 짙은 청색 비단으로 마감되어 있었으며, 정면에는 밤하늘을 형상화한 금박 무늬가 박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하늘은 완벽히 평평했다. 먼 점광원들이 모두 같은 두께의 금선으로 찍혀 있었고, 아무 거리감도 없었다. 오래전 장인이 의도한 장식이었겠지만, 그날 밤 그 방에 들어선 사람들 가운데 절반은 그것을 보고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천문원장 부인의 초대로 열린 작은 저녁 모임이었다. 공식 명칭은 “계절 강연 후 자유토론”. 실제로는 학회 전날 밤마다 벌어지는 반쯤 사교적이고 반쯤 전쟁 같은 자리였다. 귀족 후원자, 언론인, 시인, 고위 성직자, 천문학자, 항법공학자, 그리고 과학에 돈을 대는 산업가들이 한 방에 섞였다. 은식기와 포도주, 광택 나는 구두와 조용한 경멸이 함께 있는 공간이었다.

그날 밤 모두가 진짜로 기다리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외광실재론의 얼굴로 떠오른 젊은 천문학자 마렌 도르. 그리고 내계완결론의 마지막 거인으로 불리는 노학자 세르 아렘.

마렌은 아직 서른일곱이었다. 너무 젊어서 무례해 보이는 나이였고, 실제로도 종종 무례했다.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장식이 거의 없었다. 대신 목에는 작은 은색 펜던트가 하나 걸려 있었다. 외행성 탐사선 아르고스-3의 비행 궤도를 단순화한 도형이었다.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들만이 피식 웃거나 눈살을 찌푸렸다.

세르 아렘은 방 반대편 창가에 서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의 주름보다 눈빛이 더 얇아지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별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방 안 중심은 그가 있는 쪽으로 기울어져 보였다. 그는 한 시대의 교과서였다. 하늘이 닫혀 있다는 생각을, 단지 종교가 아니라 수학과 관측으로 가장 우아하게 체계화한 인물. 젊은 시절의 논문은 아직도 학생들이 외운다.

그들이 직접 마주치기 전부터, 방 안에는 이미 논쟁의 잔향이 깔려 있었다.

“시차라는 게 결국 탐사선의 자세 오차 아닙니까?”

어느 철강 재벌이 물었다. 질문이라기보다 자기 편을 확인하는 소리였다.

그 옆에 있던 주간지 편집장이 와인을 흔들며 말했다.

“오차라기엔 너무 오래 버텼지요. 요즘은 시인들도 배경광이 ‘멀어졌다’고 씁니다.”

“시인들이 문제군요.” 성직자가 중얼거렸다. “증거가 확정되기 전에 공포를 미학으로 바꾸니까.”

“아니요.” 마렌이 처음으로 끼어들었다. “공포가 먼저 있었고, 시인들은 단지 빨리 알아차렸을 뿐입니다.”

방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그녀의 말은 지나치게 정직했다. 이런 자리에서는 정직함이 예의 부족으로 들린다.

세르 아렘은 천천히 잔을 내려놓고 마렌 쪽으로 몸을 돌렸다.

“공포라. 도르 박사는 늘 너무 빨리 결론에 도달합니다.”

“선생님은 늘 너무 오래 도착을 미루시고요.”

몇 사람이 숨을 삼켰다. 천문원장 부인은 미세하게 웃었지만, 그건 곤란할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이런 자리에선 대놓고 싸우지 않는 것이 규칙이다. 규칙을 아는 사람들은 더 잔인하게 싸운다.

세르 아렘이 말했다.

“젊은 세대의 문제는, 측정 가능한 것과 이해 가능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몇 개 광점의 위치 변화가 곧 우주의 구조를 바꾸진 않습니다.”

마렌이 답했다.

“하지만 우주의 구조는 종종 몇 개 광점의 위치 변화에서만 드러납니다.”

“드러난다고 믿는 거겠지요.”

“선생님 세대는 하늘이 닫혀 있어야만 질서가 유지된다고 믿었습니다. 저희 세대는 질서가 닫힘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질서가 아니라 정신이 문제입니다.” 세르 아렘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끝없는 거리를 실재로 받아들일 때, 문명은 세계의 크기를 잃는 것이 아니라 자기 척도를 잃습니다. 당신은 그 차이를 과소평가하고 있어요.”

이건 단지 과학적 반론이 아니었다. 방 안 사람들 대부분이 그걸 느꼈다. 세르 아렘은 지금 데이터가 아니라 문명의 평형을 말하고 있었다.

벽난로 옆 소파에 앉아 있던 시인 리세트가 중얼거렸다.

“척도를 잃는다는 말은 아름답네요.”

편집장이 웃었다.

“우린 지금 역사적 순간에 참석 중입니까, 아니면 장례식 전야입니까?”

“둘 다일지도 모르죠.” 리세트가 말했다.

그 사이 하인이 은쟁반에 따끈한 향신료 와인을 들고 지나갔다.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방 안 공기는 따뜻했지만,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추워 보였다.

천문원장 부인이 재빨리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 했다.

“아렘 선생님, 도르 박사. 내일 학회에선 어차피 공식 발표가 있을 테니 오늘은 조금 더 자유롭게, 덜 공격적으로 말씀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세르 아렘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매너와 피로가 정확히 같은 양으로 섞여 있었다.

“부인, 저는 공격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오래 살아 본 사람의 신중함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마렌은 그 말을 듣고 아주 잠깐 고개를 숙였다. 조롱인지 인정인지 모호한 동작이었다.

“오래 살아 본 분들이 늘 세계를 더 잘 아는 건 아니죠.”

이번엔 정말로 몇몇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누군가는 황홀했고, 누군가는 질색했다. 이런 순간을 위해 사교모임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공식 학회에서는 이런 문장이 기록에 남지 않는다.

세르 아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렌을 바라보았고, 마렌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방 안 다른 모든 대화는 거의 멎었다. 음악도 없고, 유리잔의 부딪힘도 없고, 멀리 복도에서 발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마침내 세르 아렘이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아주 단순하게 묻죠, 도르 박사. 내일 발표가 맞다고 합시다. 탐사선의 시차 측정은 진짜고, 외광의 일부는 유한한 거리에 있는 광원이라고 합시다. 그래서요?”

이건 공격이었다. 그리고 아주 좋은 공격이었다. “그래서요?”는 언제나 위험하다. 상대가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명을 뒤집으려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니까.

마렌은 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주를 잘못 가르쳐 왔다는 뜻입니다.”

“그건 학문의 일입니다.”

“아니요. 학교의 일이고, 종교의 일이고, 정치의 일이고, 시의 일입니다. 아이들이 밤하늘을 그리는 방식의 일이고요.”

누군가 웃으려다 멈췄다.

마렌은 계속 말했다.

“우리는 외광을 배경이라고 불렀습니다. 닿을 수 없는 표면이라고. 내계만이 측정 가능하고, 그러므로 실재한다고 가르쳤죠. 그런데 만약 저 점들 가운데 일부가 정말 항성이라면, 우리는 하늘에 대해 틀린 것이 아니라 존재론의 분류 체계 전체를 틀린 것입니다.”

세르 아렘은 즉시 받아쳤다.

“혹은 당신이 인간 정신의 한계를 틀렸을 수도 있지요.”

“그건 같은 말 아닙니까?”

이 문장은 방을 갈랐다.

한쪽 끝에서는 젊은 항법공학자들이 거의 보이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쪽에서는 성직자 두 명이 얼굴을 굳혔다. 산업가들은 계산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발견이 투자와 권력, 교육과 검열에 뭘 의미하는지 이미 재고 있었다.

그때 천문원장 부인의 여동생, 유명한 살롱 주최자 벨 아노가 부채를 접으며 말했다.

“전 과학은 잘 모르지만, 다들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지는 알 것 같아요.”

모두가 그녀를 봤다. 사교계의 말은 가볍게 취급되면서도, 이상하게 결정적인 순간에 핵심을 찌른다.

“우리가 그 점광원들을 실재로 인정하는 순간,” 그녀가 말했다. “우리 집의 천장이 갑자기 아주 높아질 테니까요.”

방 안에서 아주 작은 웃음이 났다. 이번엔 진짜 웃음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더 섬뜩했다. 모두가 비유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세르 아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아노 부인. 바로 그겁니다. 천장이 높아지면 사람은 자유로워지는 동시에, 보호를 잃습니다.”

마렌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천장이 애초에 없었는데 있는 척하며 사는 건, 보호가 아니라 착각 아닐까요?”

잠깐의 정적.

그때 방 구석에 있던 젊은 기자 하나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선생님들,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정말로, 두 분 다… 무서우십니까?”

너무 직접적인 질문이라 무례했다. 동시에 모두가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세르 아렘은 기자를 보지 않고 대답했다.

“나는 무섭다기보다, 슬픕니다.”

마렌은 그보다 조금 늦게 말했다.

“저는 무섭습니다.”

이번엔 누구도 웃지 않았다.

세르 아렘이 그녀를 바라봤다. 처음으로 그의 표정에서 방어가 조금 걷혔다.

“그런데도 내일 발표하겠다는 겁니까?”

“네.”

“왜죠?”

마렌은 잠깐 생각한 뒤 대답했다.

“이미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에는 드라마가 없었다. 너무 평평해서 오히려 잔인했다. 사실은 설득당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준비되었을 때만 오는 것도 아니다.

밖에서 시계탑이 열 시를 쳤다. 금속음이 창을 건너 방 안에 들어왔다. 멀리 도시의 지붕들 너머로 진짜 하늘이 있을 것이고, 그 하늘엔 여느 밤처럼 점광원들이 박혀 있을 것이다. 아직은 모두가 익숙한 이름으로 그것들을 부르고 있었다.

세르 아렘은 다시 잔을 들었다. 그러나 마시진 않았다.

“도르 박사, 내일 당신이 이기더라도 기억해 두시오. 사람들은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자기 비유를 버리는 걸 더 힘들어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정말 알고 있습니까?”

마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잠깐 창문 쪽으로 돌렸다. 커튼 틈 사이로 까만 유리처럼 굳은 밤이 보였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내일 학회에서 발표되는 건 단지 그래프 몇 장과 오차 막대들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표로 읽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기 세계의 벽이 얇아지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천문원장 부인이 손뼉을 가볍게 쳤다.

“자, 이제 모두들 디저트를 드시죠. 세계가 무너지더라도 단것은 먼저 먹어야 하니까요.”

이번엔 정말로 웃음이 퍼졌다. 피곤하고, 다소 과장되고, 조금은 안도하는 웃음. 하인들이 작은 접시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설탕 절임 과일, 견과 크림, 진한 검은 케이크.

그러나 아무리 달콤한 냄새가 퍼져도 방의 공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렌은 접시를 받지 않았다. 세르 아렘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침묵만으로도 방 전체가 내일로 기울어 있었다. 내일 아침 강당에서는 수식과 도표, 신중한 문장과 형식적 질문이 오갈 것이다. 기록은 차갑고 점잖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논쟁은 이미 여기서 끝난 셈이었다.

사람들은 데이터를 듣기 전에 먼저 무엇을 잃게 될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창밖의 하늘은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빛나고 있었다. 그 태연함이, 그날 밤 응접실에 모인 누구에게도 더는 위안이 되지 못했다.

대화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 응접실은 갑자기 너무 넓어졌다.

조금 전까지 그 방을 가득 채우던 웃음과 조심스러운 조롱, 유리잔 부딪는 소리, 실내악의 끝자락 같은 대화들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져 있었다. 벽난로의 불은 아직 살아 있었지만 한참 전보다 낮아졌고, 금박으로 장식된 천장의 평평한 별들은 어두워진 방 안에서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마렌 도르는 벽난로 앞에 서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빈 잔을 내려놓으며, 이제는 정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창가에 서 있는 세르 아렘의 뒷모습이 그녀를 붙들었다. 그는 처음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은 듯 보였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지쳐 보였다. 사람이 오래 같은 자세로 버티면, 자세가 의지처럼 보일 때가 있다.

“도르 박사.”

그녀가 돌아보자 노학자가 말했다.

“잠깐만.”

그의 목소리는 모임 내내 유지하던 단단함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마렌은 몇 걸음 다가가되 너무 가깝지는 않게 멈췄다. 창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은 실제보다 더 멀어 보였다. 검은 유리 속에서, 젊은 학자와 늙은 학자는 같은 방에 있으면서도 다른 시간대의 사람들 같았다.

세르 아렘이 한동안 밖을 본 채 말했다.

“내일 발표하겠죠.”

“네.”

“그리고 아마 맞을 겁니다.”

마렌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짧은 문장에는 반박도 비꼼도 없었다. 너무 늦은 인정은 늘 이상하게도 승리감보다 슬픔을 준다.

“선생님…”

세르 아렘이 손을 들어 막았다.

“아니요. 오늘 밤은 내가 먼저 말해야겠군.”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방금 전 사람들 앞에서 보이던 얼굴과는 달랐다. 조명이 달라서만은 아니었다. 어떤 표정은 청중을 위해 존재하고, 어떤 표정은 청중이 사라진 뒤에야 나타난다.

“당신들은 우리를 완고했다고 생각하겠죠. 낡은 세계에 매달린 사람들. 틀린 걸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비슷하게 생각하겠지.”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적어도 의심은 했지. 첫 번째 이상치가 아니더라도, 두 번째와 세 번째가 겹치는 순간부터는. 그리고 후속선 데이터가 쌓였을 때는 더 이상 모르는 척만 남았고.”

마렌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세르 아렘은 창가를 떠나 벽난로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걸음에는 기품이 남아 있었지만, 그 기품이야말로 이제는 몸을 지탱하기 위한 마지막 습관처럼 보였다.

“당신이 오늘 말한 것 중 맞는 게 있더군요.” 그가 말했다. “우리는 하늘에 대해 틀린 것이 아니라, 존재를 분류하는 방식을 틀린 겁니다.”

그 말은 그가 사람들 앞에선 끝내 하지 않았던 종류의 말이었다. 마렌은 그걸 알았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졌다.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하지만.” 그가 다시 끊었다. “그게 쉬워지진 않습니다.”

잠시 침묵.

“닫힌 하늘은 단지 이론이 아니었어요, 도르 박사. 그건 위안이었습니다.”

마렌은 그 문장을 듣고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세르 아렘은 더 이상 그녀를 보지 않았다.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듯했다.

“어릴 적 나는 밤바람 소리를 무서워했어요. 집 창틀이 흔들리면, 바깥에서 세상이 열릴 것만 같았지. 어머니는 내 침대 옆에 작은 천구의를 두고 늘 말했습니다. ‘세상은 닫혀 있다. 겁낼 것 없다.’”

그는 아주 잠깐 미소 지었다. 마렌은 그 미소가 너무 짧아서 오히려 견디기 힘들다고 느꼈다.

“나는 그 말을 평생 더 정교한 언어로 반복했을 뿐이에요. 학생들에게, 독자들에게, 이 도시 전체에. 닫힌 세계는 이해 가능한 세계라고.”

벽난로 속 장작이 낮게 무너졌다. 불빛이 한 번 흔들리며 그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었다. 그 그늘 속에서 그는 갑자기 훨씬 더 늙어 보였다.

“이제 당신은 그 벽이 원래부터 없었다고 말하러 오죠.”

“벽이 없는 것이 곧 무질서라는 뜻은 아닙니다.”

“젊은 사람답군.”

“사실입니다.”

“그래요. 사실이겠죠.”

그는 그 말을 아주 다정하게 했다. 그래서 더 참혹했다. 조롱이 아니라, 이제는 더 이상 다툴 힘조차 남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마렌은 그를 보며 문득 자신이 여기 오래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논쟁의 끝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세계관을 잃고, 그 잔해와 단둘이 남겨지는 순간의 시작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세르 아렘이 고개를 들었다.

“저는 선생님을 모욕하고 싶었던 적은 없습니다.”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너무 길어서, 마렌은 그가 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다 그가 말했다.

“알아요.”

그 한마디는 뜻밖에 부드러웠다.

“당신은 사람을 이기고 싶었던 게 아니라, 벽을 부수고 싶었던 겁니다. 그 벽이 우연히 내 얼굴을 하고 있었을 뿐이죠.”

마렌은 무어라 답하려다 멈췄다. 어떤 말도 더하면 오히려 잔인해질 것 같았다.

세르 아렘은 천천히 의자 하나를 끌어 앉았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잠시 고개를 숙였다. 지친 사람처럼 보였지만, 마렌은 그것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녀는 갑자기 이 방의 공기가 너무 얇아졌다고 느꼈다.

“전 가보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내일 뵙겠습니다.”

세르 아렘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마렌이 정말로 떠나려 몸을 돌렸을 때, 그가 아주 작게 말했다.

“도르 박사.”

그녀는 멈추었다.

“내일 내가 질문을 하면, 너무 오래 대답하지는 마시오.”

마렌은 돌아보았다.

“왜죠?”

세르 아렘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품위가 길어지면 비참해지니까.”

그 문장은 너무 정확해서, 마렌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문으로 걸어갔다. 두꺼운 카펫은 발소리를 거의 삼켰다. 손잡이를 잡는 순간, 그녀는 잠깐 망설였다. 뒤돌아보면 안 될 것 같았다. 돌아보는 건 친절이 아니라 침범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문이 조용히 닫혔다.

응접실에는 벽난로 타는 소리만 남았다.

세르 아렘은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닫힌 문을 바라보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마치 이제 누가 봐주는 사람도 없으니, 더는 자세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아직 몸이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방은 넓었다. 너무 넓었다. 금박 천장의 평평한 별들은 여전히 머리 위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거리 없는 별들. 움직이지 않는 별들. 자기가 평생 사랑했고, 가르쳤고, 지켜주려 했던 하늘.

그는 입술을 열었지만 처음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거기서 목이 막혔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입가를 눌렀다. 한 번, 아주 작게 숨이 흔들렸다. 참으려는 사람의 몸짓이었다. 아무도 없는데도, 그는 아직도 누군가 앞에 있는 사람처럼 울음을 억누르려 했다.

“나는 그저…”

다시.

말은 끝나지 않았다.

어깨가 한 번 크게 떨렸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잠시 뒤, 더 이상 막지 못한 첫 소리가 터졌다. 늙은 사람의 울음은 흔히 조용할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너무 오래 눌러두면 울음은 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몸 전체에서 나온다.

세르 아렘은 아주 오래된 사람처럼, 아주 어린 사람처럼 울었다.

가늘고 짧은 흐느낌이 아니라, 가슴이 제 호흡을 따라가지 못해 끊어지고 다시 붙는 소리. 목 안에서 갈라지는 소리. 한 시대 전체가 한 사람의 흉곽 안에서 무너지는 듯한 소리.

그는 몇 번이고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그 아이들에게…”

“내가…”

“하늘이…”

하지만 어떤 문장도 끝까지 가지 못했다.

벽난로의 불은 점점 작아졌고, 방 안의 그림자는 조금씩 길어졌다. 문 밖 복도는 고요했다. 건물 전체가 숨을 죽인 것 같았다.

세르 아렘은 끝내 손을 내리지 못한 채 오열했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다.

아무도 위로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마지막 품위를 증언해주지 않았다.

창밖의 하늘은 여전히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빛나고 있었다. 바로 그 무심함 때문에, 그의 울음은 더 오래 방 안에 남았다.

Conference

다음날 강당은 어제 밤의 응접실과 정반대였다.

거기에는 취향이 아니라 절차가 있었고, 포도주 대신 물이 있었고, 유리잔의 울림 대신 종이 넘기는 소리와 의자 다리 끄는 소리가 있었다. 천장은 높았지만 장식이 적었고, 벽은 밝았고, 창문은 커튼으로 절반쯤 가려져 있었다. 어제 밤 같았으면 그런 단순함이 위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의 강당은 오히려 더 냉정했다. 감정을 숨길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렌 도르는 발표석 뒤에서 마지막으로 자료 순서를 확인했다. 시차 검출 도표, 외행성 기준선 도식, 독립 관측 재현성 비교, 파장대별 편차 제거, 후속선 측정 누적. 화면 위의 그래프들은 매끈하고 단정했다. 어떤 것은 거의 아름답기까지 했다. 그녀는 늘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을 사랑해 왔다. 오차 막대가 줄어들고, 분산이 가라앉고, 잡음 속에서 구조가 떠오르는 순간의 아름다움.

오늘만큼은 그것이 거의 잔인하게 느껴졌다.

청중석은 빨리 찼다. 맨 앞줄에는 천문원 이사회, 학회 회장단, 후원자 대표가 앉았다. 중간 줄엔 언론과 다른 분야 학자들, 뒤쪽엔 학생들과 초청된 일반 청중.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모두가 한 가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 너무 분명했다. 어제까지는 논쟁이었고, 오늘부터는 기록이 된다.

마렌은 무의식적으로 앞줄 왼편을 봤다.

세르 아렘은 이미 와 있었다.

그는 어제보다 더 단정했다. 회색 옷깃은 흠잡을 데 없이 정리되어 있었고, 넥타이 매듭도 완벽했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밤새 무너지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춰 입은 얼굴이었다. 그는 손을 무릎 위에 포갠 채 정면만 보고 있었다. 그 자세에는 어떤 결연함이 있었지만,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위태로웠다.

마렌은 순간적으로 그가 정말 여기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동시에 어젯밤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내일 내가 질문을 하면, 너무 오래 대답하지는 마시오.

그 문장이 발표 시작 전부터 그녀의 가슴 안에 얇은 금속 조각처럼 박혀 있었다.

학회 회장이 개회를 알렸다. 의례적인 인사말은 이상할 정도로 짧았다. 다들 알고 있었다. 오늘의 진짜 사건은 서문 바깥에 있었다.

“다음 발표는 도르 박사의 ‘외행성 장기 기준선을 이용한 외광 광원의 위치 변화 측정’입니다.”

마렌은 단상으로 걸어 올라갔다.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떨림은 대개 걸음보다 손끝에 먼저 오는데, 다행히 오늘 그녀의 손은 침착했다. 그녀는 연단 위에 자료를 올리고, 강당을 한 번 둘러본 뒤 발표를 시작했다.

첫 10분은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배경을 설명했다. 내계 항법용 광점 카탈로그, 아르고스-1에서 3까지의 기준선 증가, 초기 이상치와 재측정 절차. 목소리는 평소보다 느렸고, 더 건조했다. 어쩌면 일부러 그랬는지도 몰랐다. 흥분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스크린에는 작은 점들이 떴다. 기준광 K-44118, L-902, H-11. 고전적인 카탈로그 번호들. 너무 무의미해서 거의 안전하게 보이는 이름들. 그러나 마렌이 좌표 차를 겹쳐 보여주자, 점들은 더는 안전하지 않았다. 오차처럼 보이던 것이 누적되며 방향을 갖기 시작했고, 방향이 곡선을 만들었고, 곡선이 계절 위상과 일치하기 시작했다.

강당은 조용했다. 특별할 것 없는 학회 발표처럼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엔 무언가 조여진 느낌이 있었다. 누군가 기침을 참는 소리, 종이에 연필 끝이 스치는 소리, 뒤쪽 어딘가에서 의자 쿠션이 한 번 꺼지는 소리까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마렌은 판별 과정으로 넘어갔다. 탐사선 자세 오차 제거, 광학계 열팽창 모델 배제, 매질 굴절 가능성 제거, 알고리즘 편향에 대한 독립 기관 교차 검증. 이 단계에서 몇몇 청중이 메모를 시작했고, 몇몇은 팔짱을 풀었다. 반박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반박할 틈이 줄어드는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마지막 도표를 띄웠다.

세 개의 독립 탐사선 경로.

같은 광원군.

서로 다른 계절 위상.

그리고 완벽하진 않지만, 더 이상 우연이라 부를 수 없는 미세한 시차 곡선.

그 순간 강당의 침묵은 질감이 바뀌었다.

이제 침묵은 무관심이나 예의가 아니라, 사람들이 같은 절벽 가장자리까지 와 있다는 신호였다.

마렌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유리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이상으로부터 98년간 누적된 관측과 교차 검증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판결문을 대신 읽는 사람 같았다.

“외광으로 분류되어 온 배경 점광원 중 일부는, 무한 원경의 천구 패턴이 아니라 유한한 거리에 위치한 독립 광원입니다. 이 광원들은 연주시차를 보이며, 따라서 우리 기준계 외부의 실재하는 항성적 천체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렌은 멈추지 않고 이어갔다.

“이는 내계와 외광의 고전적 구분이 관측 기술의 한계에 기초한 임시 분류였음을 뜻합니다. 또한 우리 항성계가 지금까지 추정해 온 것보다 훨씬 더 큰 항성 분포 구조의 일부이거나, 혹은 그 구조로부터 장거리 고립된 위치에 놓여 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이 문장에서 강당 뒤편 어딘가가 아주 작게 술렁였다. “고립”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수학보다 빨리 사람을 찔렀다.

발표는 끝났다. 마렌은 마지막 화면을 내리지 않았다. 세 개의 작은 시차 곡선이 여전히 스크린 위에 떠 있었다. 너무 작아서, 저 얇은 선 몇 개가 문명의 하늘을 바꿨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학회 회장이 말했다.

“질문을 받겠습니다.”

그 짧은 문장은 마치 마지막 문이 열리는 소리 같았다.

처음 질문은 예상대로 기술적인 것이었다. 후속선 D-7의 감도 드리프트 보정 방식, 계절별 기준 오프셋, 외곽 먼지대의 미세 산란 가능성. 마렌은 차분하게 답했다. 그녀는 세르 아렘을 보지 않으려 애썼지만, 시야 가장자리로는 계속 그의 존재를 느꼈다. 아직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네 번째 질문이 끝난 뒤, 잠깐 공백이 생겼다.

그리고 세르 아렘이 천천히 일어났다.

강당 전체가 아주 미세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다. 의식적으로 숨을 멈춘 사람은 없었겠지만, 공기 전체가 얇아졌다. 노학자의 이름은 아직도 하나의 제도였다. 사람들이 그를 보는 시선엔 존경, 피로, 반감, 연민, 기대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세르 아렘은 마이크를 받지 않고 그냥 말했다. 강당의 음향이 좋아서, 그의 늙은 목소리는 의외로 또렷하게 퍼졌다.

“도르 박사.”

마렌은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그는 한 손을 연단 쪽으로 아주 조금 들어 올렸다. 마치 수업 시간의 질문 같기도 했고, 판결 직전의 형식적 요청 같기도 했다.

“당신의 결론을 위해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세 광원군의 위치 편차가 독립 경로에서 동일 위상성을 보인다는 점입니까?”

마렌은 어젯밤의 말을 떠올렸다. 너무 오래 대답하지는 마시오.

그녀는 즉시 답했다.

“네. 그 점이 가장 결정적이었습니다.”

세르 아렘은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그리고 당신 판단에, 남아 있는 계통 오차 가능성은 이 결론을 보류할 만큼 크지 않습니까?”

마렌은 숨을 한 번 들이켰다.

“그렇습니다. 제 판단에, 더는 보류의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강당은 여전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질문들은 기술적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기술적이지 않았다. 지금 이 노학자는 논문을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시대의 퇴장을 정식 문장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세르 아렘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도르 박사… 우리가 지금까지 ‘배경’이라 부른 것들 중 적어도 일부는, 배경이 아니었다고 말해도 되겠습니까?”

이번에는 강당의 어디선가 정말로 누군가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마렌은 그의 얼굴을 보았다. 어젯밤 울었던 사람의 얼굴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오히려 더 잔인했다. 그는 다시 품위를 입고, 그 품위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마렌은 짧게 대답했다.

“예.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세르 아렘은 한동안 서 있었다. 너무 길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그 짧은 정적 안에서 무언가가 지나가는 걸 보았다.

그는 천천히 마이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의장님.”

학회 회장이 몸을 바로 세웠다.

“저는 추가 질문은 없습니다.”

또 잠깐 멈춘 뒤, 세르 아렘은 강당 전체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발표자에게… 신중함에 감사드립니다.”

그 문장은 이상하리만치 점잖았다. 그래서 더 큰 충격을 주었다. 누구도 “패배를 인정합니다” 같은 말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 대신 나온 이 말은 더 분명했다. 그는 더 이상 싸우지 않는 방식으로, 가장 공개적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강당 뒤편에서 누군가 연필을 떨어뜨렸다. 가벼운 소리였는데 총성처럼 크게 들렸다.

세르 아렘은 자리에 앉았다.

학회 회장은 몇 초간 말을 찾지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다른 질문 있습니까?”

이제 질문은 몇 개 더 나왔지만, 이미 중요한 것은 끝난 뒤였다. 후속 관측 계획, 거리 척도 확장, 교육과정 개정 필요성. 사람들은 질문을 했지만, 방금 전과 같은 질문은 아니었다. 그것은 더 이상 논쟁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인정 이후를 살아가기 위한 질문이었다.

마렌은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발표를 마치는 동안에도 그녀는 세르 아렘을 보지 않았다. 보아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 그의 마지막 품위를, 그 자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더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박수는 길지 않았다. 강한 환호도, 야유도 없었다. 오히려 이상하게 절제된 박수였다. 사람들은 무엇을 축하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진실의 승리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이 방금 낡아버렸고, 패배라고 하기엔 누구도 거짓을 계속 지킬 수는 없었다.

회의 종료 선언이 나왔다. 사람들이 일어나고, 의자가 밀리고, 종이들이 접히고, 낮은 목소리들이 다시 살아났다. 몇몇은 바로 마렌에게 몰려왔고, 몇몇은 세르 아렘 주위에 모이려 했다. 그러나 노학자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난 뒤였다.

그는 누구와도 악수하지 않았다. 누구도 밀어내지 않았지만, 누구도 가까이 오게 하지 않는 속도로 통로를 걸어 나갔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마렌은 연단에서 자료를 정리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강당 뒤쪽 문 앞에서 세르 아렘이 아주 잠깐 멈췄다. 돌아보진 않았다. 다만 왼손이 의자 등받이처럼 허공을 한 번 더듬었다. 아주 짧은 몸의 배신이었다. 피로인지, 어지러움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짧은.

그리고 그는 다시 걸어 나갔다.

문이 닫혔다.

마렌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다봤다. 맨 위 장에는 발표 제목이 인쇄되어 있었다.

외행성 장기 기준선을 이용한 외광 광원의 위치 변화 측정

너무 건조하고, 너무 정확한 제목. 그 아래의 세계는 이제 다시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강당은 점점 비어 갔다. 남은 사람들은 이미 다음 연구비, 다음 교과서, 다음 세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과학은 늘 그랬다. 한 세계가 끝나도, 곧바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마렌은 이상하게도, 방금 끝난 것이 연구 프로그램의 전환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젯밤 응접실에서 한 사람이 홀로 울었고, 오늘 이 강당에서 같은 사람이 모두 앞에서 물러났다.

문명은 대개 그런 방식으로 바뀐다. 거대한 선언보다 먼저, 어떤 한 사람이 자기 안에서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우주의 형태를 놓아버리는 방식으로.

마렌은 자료철을 닫았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강당을 나섰다.

Afterward

마렌 도르는 처음으로 “원시화구”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 자리는 수도 과학원의 소회의실이었다. 궤도망원경 2차 관측 자료를 검토하는 내부 세미나였고, 발표자는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우주론자 엘리안 베르였다. 그는 너무 젊은 세대답게, 우주의 구조를 이야기하면서도 목소리에 거의 경건함이 없었다. 마렌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떤 사실은 존중 없이 다루면 곧바로 천박해진다.

엘리안은 스크린 앞에서 긴 막대 지시봉으로 적색편이 분포를 가리켰다.

“문제는 이제 더는 은하들이 멀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그건 모두가 압니다. 중요한 건 이 후퇴가 국소 운동들의 합이 아니라, 더 큰 계의 시간적 전개를 시사한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구조가 주어진 우주를 보는 게 아니라, 구조가 생겨나는 우주의 단면을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마렌은 이미 불편했다. “시간적 전개.” “생겨나는 우주.” 그런 표현들은 천문학보다 신학에 가깝게 들렸다.

엘리안은 멈추지 않았다.

“퀘이사의 분포를 보십시오. 가까운 우주에서는 드물고, 멀리 갈수록 많아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표본 효과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주는 모든 시대에 동일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마렌은 결국 입을 열었다.

“베르 박사.”

젊은 발표자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돌아봤다. 그는 마렌을 존경했고, 동시에 그녀에게 인정받고 싶어했다. 젊은 학자들의 눈빛은 늘 그런 식으로 투명하다.

“예, 선생님.”

“당신은 ‘우주가 동일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의 관측 해석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작은 웃음이 방 안에 흘렀다. 우아한 공격이었다. 엘리안은 얼굴을 붉히지 않으려 애쓰며 답했다.

“현재로선 후자가 더 안전한 표현이겠죠. 다만 전자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생각이 항상 좋은 과학은 아닙니다.”

엘리안은 멈칫했다가, 의외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무 오래 신중하면 사실이 도착할 자리를 없애기도 합니다.”

그 문장을 들은 순간 방 안 공기가 미세하게 변했다. 너무 젊어서 몰랐을 수도 있고, 알고도 말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 말은 마렌의 심장 어딘가에 정확히 닿았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차갑게 말했다.

“그 문장은 내가 한때 알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세미나는 그 뒤에도 계속되었지만, 마렌은 절반쯤 듣지 않았다. 스크린에 떠오르는 적색편이-거리 도표, 퀘이사 광도 함수, 은하 진화 모형. 모두가 그녀를 점점 더 불쾌하게 했다.

문제는 단지 이론의 급진성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데 있었다. 빅뱅류의 모델은 우주를 너무 쉽게 “시작된 것”으로 만들었다. 마렌이 사랑했던 우주는 열려 있었고, 깊었고, 차가웠고, 무심했다. 그런 우주는 인간에게 아무 특권도 주지 않지만, 동시에 아무 극적 중심도 주지 않는다. 그녀는 바로 그 무심함을 사랑했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우주를 다시 서사로 바꾸고 있었다. 처음이 있고, 진화가 있고, 뜨거운 기원이 있고, 더 어린 우주와 더 늙은 우주가 있다. 너무 이야기 같았다. 너무 인간적이었다. 너무 견딜 수 없을 만큼 의미 있어 보였다.

그날 저녁 그녀는 연구소를 일찍 나왔다. 차를 타지 않고 걸었다. 초겨울 바람이 차가웠고, 도시는 이미 불을 밝히고 있었다. 쇼윈도에 비친 자기 얼굴은 생각보다 더 굳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불도 켜지 않은 채 창가 의자에 앉았다. 유리 바깥으로 보이는 하늘은 여느 때와 같았다. 맨눈의 하늘은 늘 늦은 시대의 유물 같았다. 진짜 우주는 광학계와 필터와 분광기와 긴 계산 뒤에 있었다.

마렌 도르는 뒤늦게 깨달았다. 자기가 빅뱅을 거부하는 이유가, 결코 전부 과학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물론 그녀는 젊은 우주론자들의 성급함이 못마땅했다. 너무 아름다운 이론, 너무 빠른 통합,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설명해버리는 방식. 그녀는 그것을 경계했고, 그 경계에는 분명 학문적 이유가 있었다.

그건 절반만 진실이었다.

그녀가 사랑했던 것은 단지 하늘이 아니었다. 그녀가 사랑했던 것은 하나의 우주모델이었다.

열려 있으나 시작되지 않은 우주. 깊이를 가지되 기원을 강요하지 않는 우주. 별들이 셀 수 없이 멀리 흩어져 있고, 그 거리 자체가 인간의 상상력을 겸허하게 만드는 우주. 설명되기보다 견뎌져야 하고, 이야기되기보다 응시되어야 하는 우주. 젊은 시절의 마렌은 그런 우주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이름은 이제 거의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았다. 논문 몇 편의 각주, 오래된 관측 보고서의 공동저자란, 외행성 기준선 계획 초기에 남겨진 서명 몇 줄. 그는 유명한 학자가 되지 못했고, 더 큰 발견의 이름이 되지도 못했다. 아직 외광의 실재가 확정되기 전, 모든 것이 논쟁이었고, 밤하늘은 여전히 반쯤은 철학이고 반쯤은 측정이던 시절. 그들은 관측소 옥상에 나란히 누워, 맨눈으로는 아무것도 충분히 알 수 없는 하늘을 끝없이 올려다보곤 했다.

그는 말이 적은 사람이었다. 마렌처럼 논쟁을 사랑하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에 큰 재능도 없었다. 대신 그는 아주 오래 침묵하며 하늘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새벽 무렵, 외곽 관측소의 돔이 열려 있고 기온은 거의 영점 아래로 떨어져 있었는데, 마렌이 떨리는 손으로 좌표표를 정리하다 말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결국 아무도 안 믿을 텐데.”

그는 그녀를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우리가 하늘을 사랑하니까.”

그 문장은 그때는 너무 단순해서 우스워 보였다. 마렌은 실제로 웃었고, 그를 향해 “그건 과학자가 할 말이 아니라 시인이 할 말이야”라고 핀잔을 줬다.

그러자 그가 아주 드물게 웃으며 대답했다.

“좋은 과학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걸 측정하는 사람이기도 하잖아.”

그들의 관계는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다. 젊은 시절의 두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미루었다. 발표가 끝나면, 다음 관측이 끝나면, 논쟁이 정리되면, 상대 학파를 설득하면, 세상이 조금만 더 분명해지면. 하지만 세계는 좀처럼 분명해지지 않았고, 사람의 생은 학문보다 짧았다.

그는 병을 얻었다. 천천히 쇠약해졌고, 연구실에 나오는 날이 줄었고, 마지막엔 편지 몇 장만 남겼다. 그 편지들에도 사랑 고백 같은 건 없었다. 대신 측정치, 안부, 한두 줄의 농담, 그리고 가끔 하늘 이야기가 있었다.

그중 한 편지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우리가 틀리더라도, 우리가 사랑한 하늘까지 거짓이 되는 건 아니겠지.”

마렌은 그 문장을 평생 버리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 외광의 실재가 입증되고, 세르 아렘의 세계가 무너지고, 마렌 자신의 이름이 새 시대의 상징처럼 불리게 된 뒤에도, 그 문장은 오래 그녀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그녀에게 우주란 한때 그 사람과 함께 바라보던, 깊고 조용하고 시작 없는 하늘이기도 했다.

그래서 빅뱅 이론이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빅뱅은 단지 새로운 과학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가 사랑했던 우주의 형식을 다시 한 번 과거로 밀어 넣는 일이었다. 열린 하늘은 남아 있었지만, 이제 그 하늘은 영원한 심연이 아니라 어떤 뜨겁고 밀집된 시작에서 펼쳐진 역사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마렌은 거의 모욕감을 느꼈다.

그건 마치 누군가가 오래 간직한 연인의 편지를 가져가 “아름답군요. 하지만 이제 이건 잘못된 세계관에 근거한 감상이었어요”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했다.

Conference 2

공개 토론회는 수도 과학원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제는 이런 행사가 드물지 않았다. 적색편이 지도가 확장되고, 퀘이사 후보가 늘어나고, 궤도망원경의 심우주 사진이 대중에게까지 소비되기 시작한 뒤로, 우주론은 더 이상 소수 전문가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신문들은 우주를 1면에 실었고, 시사 잡지는 “우주에도 어린 시절이 있었는가” 같은 제목을 뽑았으며, 젊은 철학자들은 시간의 기원을 두고 종교인들과 대담을 벌였다.

마렌 도르는 그런 분위기를 싫어했다.

우주가 너무 빨리 대중의 비유로 변해버리는 것이 못마땅했다. 어떤 것은 오랫동안 차갑게 남아 있어야 한다고, 그녀는 여전히 믿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기가 젊었을 때도 다른 세대의 눈엔 충분히 무례하고 성급했을 것이라는 걸.

그날 토론의 제목은 지나치게 단정했다.

〈우주의 역사와 기원: 최근 관측의 함의〉

연단 위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젊은 우주론자 엘리안 베르, 분광관측 전문가 리사 헬, 그리고 특별 초청자로 마렌 도르. 사회자는 중립적인 표정으로 세 사람을 소개했지만, 청중은 이미 누가 오늘의 중심인지 알고 있었다.

마렌은 자기 이름이 불릴 때 박수가 엘리안보다 더 길게 이어지는 걸 듣고 오히려 피로를 느꼈다. 늙은 학자에게 보내는 존경은 때때로 기대보다 잔인하다. 사람들은 당신이 지혜를 말해주길 바라지만, 실제로는 당신이 시대의 장례식에 품위를 부여해주길 원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엘리안이 먼저 발표했다.

그는 명료하고 젊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적색편이-거리 관계와 은하 분포, 퀘이사의 시간적 편향, 초기 우주가 더 조밀하고 뜨거운 상태였을 가능성을 차례로 설명했다. 그의 발표는 훌륭했다. 너무 훌륭해서, 마렌은 거의 짜증이 날 정도였다. 도식은 매끈했고, 논리는 과감했고, 무엇보다 그 과감함이 아직 자기 젊음의 비용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더 눈부셨다.

리사 헬이 그 뒤를 이어 보다 신중한 요약을 내놓았다. 직접 관측이 말해주는 것과 이론적 외삽이 요구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적어도 “기원”이란 단어를 쓰는 데는 한 단계의 겸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중 몇몇이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 진짜 듣고 싶은 건 마렌의 입에서 나올 말뿐이라는 걸.

사회자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르 선생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강당은 조용해졌다.

마렌은 준비해 온 원고를 펼쳤다가, 잠시 내려다보고, 다시 접었다. 종이 위 문장들은 너무 정돈되어 있었다. 너무 방어적이거나, 너무 현명했다. 그녀는 오늘 그런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마이크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나는,” 그녀가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이 젊은 세대의 우주론을 못마땅하게 여겨 왔습니다.”

청중석에서 아주 작은 웃음이 흘렀다. 예상보다 직설적인 시작이었다. 엘리안은 고개를 아주 약간 숙였고, 사회자는 미소를 감추려 했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빠르고,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설명하려 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런 이론을 경계합니다. 대체로 그 경계는 옳았습니다.”

그녀는 잠시 멈췄다.

“하지만 오늘은, 그 경계가 전부 과학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도 말해야겠습니다.”

이번에는 정말로 강당이 굳었다. 사람들은 늙은 학자가 이론을 비판하는 데는 익숙했지만,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

마렌은 시선을 청중 위로 흘렸다. 앞줄의 학생들, 기자들, 젊은 연구자들, 그리고 몇몇 늙은 동료들. 모두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해 보였다.

“내가 젊었을 때,”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닫힌 하늘을 끝내는 쪽에 있었습니다. 배경으로 불리던 점광원들이 실재하는 항성이라는 것을, 우리 세계가 닫힌 구체가 아니라 더 큰 분포 속의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내 인생을 썼지요.”

그녀는 엘리안을 잠깐 바라봤다.

“그 무렵 나는 확신했습니다. 진실은 항상 해방이라고.”

아주 짧은 침묵.

“지금은 그렇게 단순하게 믿지 않습니다.”

청중 어딘가에서 누군가 자세를 고쳐 앉는 소리가 났다. 마렌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젊은 시절, 나는 하나의 우주를 사랑했습니다.”

이 말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과학 토론회에서 “사랑”이란 단어는 늘 조금 위험하다. 너무 빨리 수사처럼 들리고, 너무 쉽게 방어가 무너진다.

“그 우주는 열려 있었지만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깊었지만, 인간에게 기원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별들은 흩어져 있었고, 거리는 끝없이 멀었고, 그 멂 자체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런 우주를 사랑했습니다. 차갑고, 무심하고, 영원히 배경을 허락하지 않는 우주를.”

이제 강당은 너무 조용해서, 누군가의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마렌은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문장이 나오자 그녀 자신의 목소리도 아주 조금 바뀌었다. 청중은 아직 그 이유를 모를지 몰라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더 이상 이론 이야기가 아니게 될 거라는 걸.

“그 우주를 나와 함께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일입니다. 그는 나만큼 유명해지지 못했고, 나만큼 오래 살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하늘을 사랑했던 방식에는 언제나 그의 시선이 함께 있었습니다.”

엘리안이 천천히 그녀를 바라봤다. 리사 헬은 아예 메모를 멈췄다.

“우리는 한때 같은 하늘 아래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은 우리에게 단순한 연구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세계의 형식이었습니다.”

마렌은 눈을 들었다. 강당 맨 뒤는 빛이 약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점이 좋았다.

“그러니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우주를 다시 시작시키려 할 때, 내가 저항한 것은 단지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하나의 우주모델을 지키려 했고, 동시에 그 우주를 사랑하던 내 젊은 날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사람을도.”

그 말은 고백치고는 너무 조용했고, 그래서 더 강했다.

사회자는 꼼짝도 하지 못했고, 기자들은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젊은 학생들은 거의 숨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마렌은 이제 더는 멈출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한 번 입 밖에 나온 진실은 언제나 다음 진실을 끌고 나온다.

“나는 이 젊은 세대의 우주론이 틀렸다고 단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적어도 아직은. 왜냐하면 그것은 우주를 역사로 만들고, 시작으로 만들고, 뜨거운 기원으로 되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우주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아주 천천히 덧붙였다.

“어쩌면 끝내 배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강당에 이상한 공기가 흘렀다. 이건 패배 선언이 아니었다. 승리자의 관용도 아니었다. 그저 한 사람이 자기 한계를 품위 있게, 그러나 감추지 않고 내놓는 순간이었다.

엘리안이 사회자를 보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

그의 목소리는 젊었지만, 조금 떨렸다.

“그렇다면… 저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은 너무 정직해서, 강당 안 거의 모든 사람이 동시에 그쪽을 돌아봤다. 엘리안은 이론을 옹호하는 대신, 자신이 지금 무엇을 계승하고 무엇을 버리는지 묻고 있었다.

마렌은 그를 바라봤다. 문득 아주 오래전 세르 아렘과 마주 서 있던 자신의 젊은 얼굴이 겹쳐 보였다.

“계속 가야지요.” 그녀가 말했다.

엘리안의 표정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마렌은 말을 이었다.

“계속 가되, 여러분이 새로 여는 우주가 누군가에겐 상실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학은 앞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간다는 이유만으로, 뒤에 남겨지는 감정들을 조롱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나는 젊었을 때 그 점을 충분히 몰랐습니다.”

이제 청중 몇몇은 거의 고통스러운 집중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한 노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닫힌 하늘을 사랑했습니다. 나는 그를 답답하게 여겼고, 때로는 경멸했습니다. 나는 그가 틀렸다고 생각했고, 그건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그는 단지 틀린 이론을 지키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견딜 수 있는 우주의 형태를 붙들고 있었던 겁니다.”

강당의 공기가 더 깊어졌다. 이제 모두가 세르 아렘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나는 지금 그와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 문장은 거의 속삭임처럼 나왔지만, 누구도 놓치지 않았다.

“여러분이 여는 우주는 더 크고, 더 격렬하고, 더 역사적일지 모릅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러니 가십시오. 다만 때때로 뒤를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이 지나쳐 온 우주들 중에는, 단지 틀렸다는 이유만으로 끝내 조롱되어선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학문이 있었고, 누군가의 기도 같은 엄밀함이 있었고, 누군가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 마지막 단어를 들은 순간, 강당 안에서 아주 미세하게 누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마렌은 말을 마쳤다. 더는 덧붙일 문장이 없었다. 원고는 여전히 접힌 채 연단 위에 놓여 있었다.

몇 초간 완전한 정적이 이어졌다.

그건 어색한 침묵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방금 들은 것이 논문 코멘트가 아니라, 한 세대의 자기 고백이라는 걸 이해하느라 필요한 시간이었다.

가장 먼저 박수를 친 사람은 뜻밖에도 엘리안이었다.

그의 박수는 조심스러웠고, 거의 애도 같았다. 곧 리사 헬이 따라 쳤고, 그러자 앞줄 몇 사람이, 뒤쪽 학생들이, 마침내 강당 전체가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 박수는 환호가 아니었다. 승부가 난 뒤의 축하도 아니었다.

그건 어떤 시대를 보내는 방식에 가까웠다.

마렌은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그녀는 울지 않았다. 이미 그 감정은 오래전 다른 밤들에서 대부분 지나가 있었다.

그러나 박수가 이어지는 동안, 그녀는 문득 아주 선명하게 한 사람을 떠올렸다. 관측소 지붕 위에 누워, 아직 시작을 믿지 않던 시절의 하늘을 함께 보던 젊은 남자. 그리고 벽난로 불빛 아래 홀로 오열했을 노학자.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시대의 얼굴이었지만, 이제 그녀 안에서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녀는 속으로 아주 짧게 말했다.

이제 보냅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었다. 옛 연인에게일 수도 있었고, 정적인 우주에게일 수도 있었고, 그 우주를 사랑하던 젊은 마렌 자신에게일 수도 있었다.

아마 셋 모두였을 것이다.

박수가 끝났을 때, 마렌은 의자에 다시 앉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물러나며, 자기 손이 이제 거의 떨리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우주는 여전히 논쟁 중이었고, 젊은이들은 계속 더 멀리 갈 것이고, 자기가 사랑하던 우주는 이제 점점 더 과거의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제는 흘려보낼 시간이었다.

천문학자 마렌 도르 별세

외광 항성 실재 입증·궤도망원경 사업 주도

수도, 11일 — 천문학자 마렌 도르가 10일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4세.

도르는 외행성 탐사선의 장기 기준선을 활용한 위치 측정 연구를 통해, 오랫동안 배경광으로 분류되던 점광원 일부가 실제로는 유한한 거리에 있는 독립 항성이라는 점을 입증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 연구는 내계와 외광을 구분하던 기존 천문학 체계의 수정으로 이어졌으며, 이후 외부 항성 분포 연구의 출발점이 됐다.

그의 초기 연구는 당시 닫힌 우주 모델을 지지하던 학계 주류와 충돌했다. 특히 세르 아렘과의 공개 논쟁은 학문사적 전환점으로 자주 언급된다. 이후 장기간의 후속 관측과 재현 검증을 거쳐 도르의 해석이 학계의 표준적 입장으로 정착했다.

도르는 중년 이후 외부 항성 거리척도 정교화, 분광 분류 보정, 외행성 관측 기준망 구축 등에 참여했다. 말년에는 대기권 밖 심우주 관측을 위한 궤도망원경 사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해당 사업의 정책적 추진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 사업은 이후 적색편이 관측 확대, 퀘이사 연구, 활동성 은하핵 및 초대질량 블랙홀 후보 관측 발전의 기반이 됐다.

그는 생애 후반,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둘러싼 새로운 우주론, 특히 팽창 우주 및 초기 고온·고밀도 상태를 전제하는 이론들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다만 관련 관측 자료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해석의 범위와 이론적 외삽의 속도를 경계하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 때문에 그는 한편으로는 보수적 노학자로, 다른 한편으로는 세대 전환기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받았다.

도르는 평생 대학과 천문원, 과학원 소속으로 연구와 교육에 종사했으며, 여러 차례 학술원상과 공로훈장을 받았다. 공식 저작으로는 《외광 기준점의 거리 문제》, 《장기 기준선 천문학 개론》, 《관측 가능한 하늘의 경계》 등이 있다.

과학원은 성명을 통해 “도르는 현대 천문학의 관측 범위를 근본적으로 확장한 학자”라고 밝혔다. 장례는 학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유족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열린 하늘을 사랑하던 마지막 로맨티스트 퇴장하다

아름다워 쉽게 오해받았고, 너무 뜨겁게 하늘을 사랑해 끝내 우주의 경계를 바꾼 천문학자 마렌 도르

어떤 사진은 사람을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더 오해하게 만든다.

마렌 도르의 부고 기사와 함께 실린 젊은 시절 사진이 그렇다. 사진 속 그녀는 아름답다. 한눈에 시선을 붙드는 얼굴, 바람에 조금 흐트러진 머리카락, 정면을 곧게 보는 눈빛. 얼핏 보면 천문학자라기보다 영화의 한 장면 속 인물처럼 보인다. 저 시절 그를 처음 본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저 아름다운 얼굴 뒤에 그렇게 뜨거운 사람이 숨어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천문학자 마렌 도르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4세.

사실만 적으면 그는 이미 충분히 큰 이름이다. 오랫동안 “배경광”으로만 여겨지던 하늘의 점광원들 가운데 일부가 실제로는 유한한 거리에 놓인 항성이라는 점을 입증한 인물. 닫힌 하늘의 시대를 끝낸 사람. 우리 문명이 자기 우주의 경계를 다시 쓰게 만든 사람. 이 정도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 마렌 도르를 기억할 때 자꾸만 업적보다 먼저 젊은 얼굴이 떠오르는 이유는, 그가 단지 위대한 학자만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오래도록 하늘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사랑은 젊은 시절의 얼굴에 먼저 드러난다.

세상은 아름다운 여성을 볼 때 늘 비슷한 실수를 한다. 먼저 외모를 보고, 다음에 분위기를 보고, 한참 뒤에야 그 사람 안에서 실제로 타오르는 것을 본다. 마렌 도르도 그랬을 것이다. 처음에는 저 아름다운 얼굴 때문에 눈에 띄었겠지만, 조금만 가까이 가 본 사람들은 곧 알았을 것이다. 저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단순한 영리함이 아니라는 것을. 저 안에는 차라리 불에 가까운 것이 있다는 것을.

마렌 도르의 진짜 힘은 외모가 아니라 열정이었다. 그것도 적당히 따뜻한 정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태워버릴 것 같은 종류의 열정이었다.

그는 하늘을 두고 타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배경으로 불리는 것을 끝까지 믿지 못했고, 벽처럼 설명되는 하늘을 견딜 수 없었고, 저 멀리 빛나는 점들이 단지 장식이 아니라 진짜 세계이기를 바랐다. 그는 하늘을 연구했다기보다, 거의 하늘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수식과 측정으로 싸웠지만, 그 밑바탕에 있던 것은 결국 “저것이 진짜이기를 바란다”는 감정에 가까웠다.

그래서 젊은 날의 마렌은 유난히 강렬하다.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아름다움 뒤에서 무언가가 너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 닫힌 하늘을 끝낸 혁명가였다. 원로 학자들과 정면으로 맞섰고, 오래된 천문학을 흔들었고, 수많은 회의와 토론에서 자기보다 나이 많고 권위 있는 사람들을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그런 싸움을 하면서도 결코 거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는 점이다. 도리어 너무 단정하고 너무 아름다워서,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그 안의 위험함을 놓쳤을 것이다. 마렌 도르의 진짜 위압감은 목소리 큰 공격성이 아니라, 자기 열정을 한 치도 굽히지 않는 데서 나왔을 것 같다.

어쩌면 바로 그 점 때문에 그의 노년이 더 쓸쓸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말년의 마렌 도르는 젊은 시절과 너무 다르다. 얼굴은 훨씬 마르고, 표정은 적고, 침묵은 길다. 젊었을 때의 그는 빛을 뿜는 사람처럼 보였다면, 늙은 그는 오래 타고 남은 열기를 안쪽에만 간신히 품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변화는 단순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너무 여러 번 자기 시대를 건너야 했던 사람이었다.

젊은 날 그는 닫힌 하늘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노년의 그는 또 다른 새로운 우주 앞에서 오래 머뭇거렸다. 적색편이, 퀘이사, 블랙홀, 그리고 정적우주를 흔드는 새로운 이론들. 젊은 후배들은 그 앞에서 다시 한 번 흥분했고, 시대는 또 움직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렌 자신이 쉽게 그 열기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것을 단순한 고집으로만 보면, 마렌 도르를 너무 쉽게 읽는 것이다.

그가 사랑했던 우주는 열린 우주였지만, 동시에 정적우주의 감각을 품은 우주이기도 했다. 별들이 끝도 없이 멀리 흩어져 있는 깊은 우주.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지만, 모든 것을 하나의 기원과 팽창의 서사 속으로 묶지는 않는 우주. 그는 그런 하늘을 사랑했다. 그래서 새로운 우주론 앞에서 그가 느낀 것은 단지 학문적 거리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먼저 상실이었을 것이다.

젊은 날의 그는 하늘을 향한 열정으로 세계를 바꿨다. 늙어서는 바로 그 열정 때문에 새 세계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과 늦게까지 붙잡아두는 것은 종종 같은 감정이다. 마렌 도르에게 그것은 하늘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래서 그를 두고 “마지막 로맨티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그는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엄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엄밀함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뜨거운 애착이 있었던 것 같다. 젊은 날에는 그 열정으로 닫힌 하늘을 끝장냈고, 늙어서는 그 열정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던 우주를 쉽게 놓아주지 못했다.

신문에 실린 젊은 시절 사진은 그래서 유난히 잔인하다. 너무 아름답고, 너무 생생하고, 너무 아직 아무것도 잃지 않은 얼굴이기 때문이다. 저 사진 속 마렌은 아직 모른다. 자기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붙들 것이라는 것도, 그 아름다움 뒤에 있던 열정이 결국 하늘의 구조 자체를 바꿔버릴 것이라는 것도, 언젠가 그 하늘마저 또 한 번 과거가 되는 장면을 끝내 자기 눈으로 보게 되리라는 것도.

아마 모르기 때문에 저렇게 눈부실 수 있었을 것이다.

열린 하늘을 사랑하던 마지막 로맨티스트가 떠났다.

그의 죽음은 단지 위대한 천문학자 한 명의 퇴장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너무 아름다워 쉽게 오해받았고, 너무 뜨겁게 하늘을 사랑해서 결국 그 하늘의 경계를 바꿔버렸고, 너무 오래 살아 자기가 사랑한 하늘마저 낡아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한 사람의 퇴장으로 읽힌다.

오늘 유난히 그 젊은 사진 속 눈빛이 오래 남는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저 눈빛은 단지 아름다운 한 여성의 눈빛이 아니라, 한 시대의 하늘을 열어젖힐 만큼 뜨거웠던 사람의 눈빛이기 때문이다.

스승 마렌 도르를 보내며

닫힌 하늘을 열었던 사람, 그리고 끝내 자신이 사랑한 우주를 놓아주지 못했던 사람

이안 세렐 | 천문학자

마렌 도르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내게 그는 처음부터 이미 큰 이름이었다. 닫힌 하늘의 체계를 흔들고, “배경광”으로만 여겨지던 점광원 일부가 실제 항성임을 입증한 사람. 우리 세대는 그 업적을 교과서에서 배웠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선생은 업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그의 첫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누구보다 오래 그의 여러 얼굴을 함께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나는 선생의 머리보다 얼굴을 먼저 보았다. 그 시절의 마렌 도르는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간 첫날,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그러나 아주 빨리 배운 것이 있다면, 그 아름다움 뒤에 얼마나 치열한 열정과 지성이 놓여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첫 논문 리뷰 때였다. 나는 외광 기준점의 계통 오차에 관한 짧은 초안을 가져갔고, 제법 잘 썼다고 믿고 있었다. 선생은 원고를 읽더니 내 쪽으로 밀어놓고 말했다. “자네는 자기 문장을 사랑하는군.” 나는 칭찬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곧 이어진 말은 달랐다. “과학자는 자기 문장을 사랑하면 안 되네. 자네가 사랑해야 할 건 문장이 아니라, 문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지 아닌지지.” 그날 나는 한 시간 넘게 내 원고가 문장부터 전제, 도표까지 하나씩 검토되는 걸 지켜봤다. 그 경험은 내게 학문의 엄격함을 보여준 것이기보다, 내가 아직 학문의 입구에조차 충분히 서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한 일이었다.

마렌 도르에게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관측 기술을 배우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하늘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쳤다. “보이는 것과 믿고 싶은 것을 구분하라.” “아름다움은 증거가 아니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은 우주는 오래 연구하기 어렵다.” 그는 엄밀했지만, 자기가 무엇에 끌리는지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스승의 얼굴을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제자의 착각이었다.

그를 향한 세간의 평은 자주 조악했다. 평생 독신으로 우주에만 미쳐 산 여자라는 식이었다. 그런 말은 선생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라고 나는 오래 생각했다. 실제로 내가 본 선생은 그런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아름다움으로 먼저 사람의 시선을 끌었고, 곧 지성과 엄격함으로 상대를 긴장하게 만들었으며, 그 뒤에는 하늘을 향한 거의 완고한 열정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면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 선생의 또 다른 얼굴을 본 것은 우주망원경 사업이 추진되던 시절이다. 지금은 당연한 전환점처럼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예산 삭감과 연기론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몇 차례 선생을 따라 비공개 회의에 들어간 적이 있다. 한 고위 관료가 사업을 3년 뒤로 미루자는 제안을 길게 설명하자, 선생은 조용히 듣다가 한마디만 했다. “지금 하신 말씀을 정리하면, 비용이 아니라 책임을 미루고 싶다는 뜻입니까?” 방 안 공기가 즉시 바뀌었다. 그는 곧바로 3년의 연기가 곧 한 세대의 관측 기회를 잃는 일이라는 점을 짧고 정확하게 설명했다. 회의가 끝난 뒤 내가 “너무 세게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라고 묻자, 선생은 내 쪽도 보지 않고 답했다. “자네는 하늘을 얻고 싶나, 이해를 얻고 싶나?”

청문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망원경의 사양부터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 세대가 하늘에 대해 묻지 않는 마지막 세대로 기억되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연구실에서 원고를 다루듯, 공적인 자리에서는 사람들의 언어를 다뤘다. 그 사업은 결국 통과됐고, 뒤이은 관측은 적색편이 지도, 퀘이사 연구, 활동성 은하핵, 블랙홀 후보 관측 등 이후 우주론의 절반 이상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아이러니는, 그 망원경이 열어젖힌 우주가 바로 선생 자신이 끝내 완전히 사랑하지 못한 우주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적색편이 자료가 쌓이고, 퀘이사가 발견되고, 우주를 더 역사적인 구조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힘을 얻으면서 학계는 다시 움직였다. 내 세대는 결국 그 변화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선생은 오래 머뭇거렸다. 젊은 날에는 그것이 답답하게 보였다. 나중에는 알게 됐다. 선생은 단지 새 이론에 저항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랑했던 우주의 형식이 과거가 되는 장면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끝내 늦게 이해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선생의 아름다움도, 그 뒤에 숨은 지성과 열정도 비교적 일찍 알았다. 선생이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 역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은, 그 모든 것을 떠받치고 있던 감정의 깊이였다. 그 열정이 단지 학문적 집요함이 아니라, 한 우주와 한 시절, 그리고 어쩌면 한 사람에 대한 상실까지 품고 있다는 사실은 선생이 말년에 스스로 입을 열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말년에 공개적으로 말했다. 자신이 사랑했던 우주가 있었다고. 열려 있었지만 한결같은 우주, 깊고 차갑고 인간에게 기원을 약속하지 않는 우주였다고. 그는 자신이 그 우주에 정서적으로도 묶여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그 고백을 듣고서야 비로소, 선생을 안다고 생각했던 내 이해가 얼마나 얕았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는 오랫동안 선생의 엄격함을 배웠고, 그의 열정을 존경했고, 그의 논쟁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선생 안에 있던 가장 사적인 층, 그가 왜 어떤 우주를 끝내 놓지 못했는지 설명해주는 감정의 층은 너무 늦게 알았다. 아마 그건 선생 자신도 아주 늦게야 남에게 보여주기로 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내가 스승에게서 배운 것은 정답만이 아니었다. 정답은 언젠가 바뀐다. 더 멀리 보게 되면 바뀌고, 더 정밀하게 재면 바뀌고, 다음 세대가 다른 질문을 하면 바뀐다. 내가 배운 것은 오히려 우주를 사랑하는 방식에도 윤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새 이론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오래 사랑한 이론을 보내주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대개 전자만 칭송하고, 후자는 과소평가한다. 마렌 도르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한 드문 사람이었다.

요즘 젊은 연구자들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오래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승을 생각한다. 그리고 내 안에도 여전히 어떤 우주를 너무 오래 사랑한 사람의 관성이 남아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선생은 마지막까지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쉬운 스승에게서 오래 배울 것은 많지 않다.

우리는 이제 선생을 떠나보낸다. 그러나 그를 보내는 일은 그가 열어젖힌 하늘을 닫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그가 보여준 것처럼 우주에 대해 더 멀리 말할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지나쳐 온 우주들 역시 누군가의 엄밀함과 누군가의 사랑 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스승에게서 배운 마지막 예의다.

마렌 도르 선생의 명복을 빈다.

도르 망원경이 처음 하늘을 열던 날

도르 우주망원경의 첫 데이터는 하루아침에 온 것이 아니었다. 예산을 둘러싼 14년의 논쟁, 발사 뒤 8년의 비행, 11개월의 전개, 173일의 냉각 안정화, 26차례의 광축 정렬 끝에야 비로소 인류는 첫 심우주 관측 데이터를 받아들었다.

오늘 새벽 도착한 그 첫 결과가 말해준 것은 가장 먼 은하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가 왜 이토록 홀로 떨어져 있는지에 대한 첫 대답이기도 했다. 학자들은 이를 은하 진화와 거시구조의 문제로 부를 것이다. 실제로 초기 분석이 가리키는 것도 그쪽이다. 우리 스텔라가 자리한 외곽 성계는 처음부터 고립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 더 큰 은하 구조에서 중력적 격변을 거치며 바깥으로 밀려난 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우리는 단지 외딴곳에 놓인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떨어져 나왔을 수 있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하나는 배치의 문제지만, 다른 하나는 역사의 문제다. 학문은 이것을 조석 상호작용과 외곽 성계 동역학의 언어로 정리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사실이 인간의 감각으로 옮겨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구조의 설명으로만 남지 않는다. 한때 더 큰 질서에 속해 있다가 지금의 적막에 이른 존재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 시작한다.

도르 망원경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마렌 도르는 젊은 시절, “배경”이라 불리던 것들에 실재를 돌려준 사람이었다. 닫힌 하늘을 끝내고, 보이는 것 너머에 진짜 거리와 진짜 별들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람. 오늘 그의 이름을 단 망원경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제 문제는 저 별들이 실재하느냐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 실재 속에서 어떤 이력을 가진 존재인가 하는 쪽으로 옮겨간다.

아이러니도 있다. 이 망원경이 보여준 우주는, 어쩌면 마렌 도르 자신이 끝내 완전히 사랑하지 못했을 우주이기도 하다. 그는 열린 하늘을 사랑했지만, 그 하늘이 다시 더 큰 구조와 더 긴 시간의 서사 속으로 재해석되는 데에는 쉽게 마음을 주지 못했다. 그녀는 평생 정적우주를 사랑했고, 말년에는 그 사랑을 과거형으로 바꾸는 일까지 견뎌내야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더 멀리 보는 도구를 지지했다. 자기가 사랑한 하늘보다 더 먼 하늘을 후대가 보게 만드는 일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좋은 과학자는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도구를 기다리지 않는다.

좋은 과학자는 자신이 사랑한 우주를 넘어서는 도구를 후대에 남긴다.

오늘 우리는 도르 망원경의 첫 데이터를 보며 새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오래전 한 천문학자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너무 아름다워 쉽게 오해받았고, 너무 뜨겁게 하늘을 사랑해서 끝내 그 구조를 바꿔버렸고, 너무 오래 살아 자기가 사랑한 하늘마저 과거가 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

이제 그의 이름은 하나의 망원경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망원경은 첫날부터,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배경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이미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늘은 늘, 우리가 사랑한 것보다 조금 더 멀리 있다고.